엑싯을 목표로 만든 브랜드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요즘 브랜드를 운영하는 많은 젊은 창업가들은 브랜드 시작의 순간부터 EXIT,
즉 ‘이 브랜드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팔 것인가’ 를 부터 고민한다고 한다.
브랜드를 하나의 감정적 실체가 아니라
숫자로 측정 되고 기능적으로 운영되는 자산으로 바라보곤 하는데,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나는 그 시각이 효율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도 그렇게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이
나의 결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한다는 건 분명 냉정한 선택과 결정을 요구하는 일이다.
특히, 재고 관리나 이익 구조, 효율과 계산 같은 단어들 앞에
'감정' 을 앞세운 선택은 때때로 방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랜드를 단순한 수익 장치로만 바라보는 게 정답일까.
하는 의문이 아직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배가 불렀네.)
몇 해 전 누군가 내게 악성 재고는 ‘썩은 생선’과 같다고 했다.
오래 두면 냄새가 나고
결국 버릴 수밖에 없는 손실이라며
최대한 빠르게 털어내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묘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 브랜드는 초기부터
재고 수량을 많이 기획하지 않아서
애초에 재고가 많지는 않지만 나는 그 재고들을
단순한 실패의 상징으로 바라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데이터적으로, 경영적으로, 그리고 비즈니스적으로.
재고를 보는 나의 시선은 그들의 언어처럼 차갑고 기능적 이지만은 않다.
내게 재고는 실패의 흔적이나 빠르게 '손절' 해야 할 비용이 아닌
과정의 결과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빨리 처리해야 할 ‘문제’ 혹은
서둘러 '손절' 해야 할 것들이 아니라,
한 시즌을 통과하며 내가 했던 선택과 주저함, 확신과 고민,
그리고 손끝으로 확인했던 원단의 결...
색감 등 말로 설명하면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브랜드를 이루는
무수한 날들의 기록이었기 때문이었나보다.
물론 나는 안다.
감정으로만 운영되는 브랜드는 오래 버티지 못할뿐더러
비즈니스라는 것은 구조 없이는 유지될리가 없고
숫자와 전략은 결국 브랜드의 척추 같은 존재라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나에게 브랜드는 시장에 진열된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믿으며 앞으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 사람 인지를 말해주는
어쩌면 또 하나의 '나' 인것도 같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브랜드란,
떠날 시점을 계산하며 키우는 도구 일 수도 있지만
내게 브랜드는 ‘떠날 대상’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변하고 완성되며
결국 내 삶, 그리고 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지며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어떤 존재이기도 하다.
이 시선이 비효율적이거나 감상적이라고 해도, 그리고 나중엔 바뀔 수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내가 만드는 브랜드는 그런 존재이다.
브랜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잘 키워놓은 아이가 성과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지는 방식의 성공과는 조금 다르다.
그 아이를 처음 품었을 때의 두려움
실패의 반복을 견뎌온 시간,
작은 변화에도 설레던 감정,
그리고 그 아이를 믿고 함께 걸어온 고객,
직원, 파트너사 그리고 묵묵히 관찰하고 응원해온 사람들까지
한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마치 한 아이를 키우며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포함된
성장의 기록과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브랜드는 ‘누가 갖는가’보다 ‘누가 함께 자라왔는가’에 의해
의미가 깊어지는 존재다.
그래서 그 브랜드가 어느 날 성과를 기준으로 다른 어떤 낯선이에게 넘어가 버린다면,
(그것이 더 효율적이고 값어치 있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를 위해 흘린 감정과 시간,
기대와 돌봄은 그를 응원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종결’을 선포하는 것이기에
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면서도 어쩐지 낯선 이별의 기류를 함께 감당해야만 한다.
브랜드는 ‘누가 갖는 가’ 보다
‘누가 함께 자라왔는 가’에 의해 의미가 깊어지는 존재 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브랜드란 무언가를 성장 시키는 과정의 기록이다.
매일 '끝'을 이야기 하는 리더가 있는 브랜드를...
과연 어느 누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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